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일리아스 완독 후기 (분노, 공감, 용서)

by hakgoo-s 2026. 11. 4.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일리아스를 읽기 전까지 트로이 전쟁을 그냥 '신화 속 싸움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완독하고 나서 든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분노로 시작해서 용서로 끝나는 이 서사시가, 제가 형과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했던 기억과 이상하리만치 겹쳐 보였거든요.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의 '전부'가 아니다

일리아스(Ilias)라는 제목부터가 흥미롭습니다. '일리온(Ilion)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일리온은 트로이의 옛 이름입니다. 영미권에서 흔히 '일리아드(Iliad)'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열어보면,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루지 않습니다. 전쟁 마지막 해, 고작 50일간의 전투만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제가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봤던 트로이의 목마 같은 장면은 여기에 없습니다. 처음엔 그게 좀 의아했는데, 읽어 나갈수록 이유를 알겠더군요.

호메로스가 담고 싶었던 건 전쟁의 '전략'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분노, 연민, 수치, 고뇌. 그 감정들이 50일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계 1위 팀과 2위 팀이 맞붙은 올스타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인데, 거기에 심판이 10명쯤 되는 그리스 신들이 수시로 개입하는 구조입니다. 처음엔 그 신들의 개입이 좀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신의 존재는 가장 강한 영웅에게도 겸손함을 강제하는 장치였던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그 위에는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죠.

  • 일리아스의 배경: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마지막 해 약 50일
  • 트로이의 목마, 헬레네 납치 직접 묘사 등은 일리아스에 등장하지 않음
  • 주요 감정 주제: 분노(menis), 명예(timē), 연민(eleos)
  • 신들의 개입: 헤라·아테나(그리스 편), 아폴론·아프로디테(트로이 편), 제우스(중립에 가까움)
요약: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전체가 아니라 50일간의 전투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담은 서사시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그리고 공리주의의 함정

일리아스의 첫 단어는 '분노(menis)'입니다. 여기서 메니스(menis)란 단순한 화가 아니라 신적인 수준의 격분, 즉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 만한 분노를 뜻합니다. 호메로스는 첫 단어부터 이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셈이죠.

아킬레우스가 왜 화가 났는지 따라가다 보면, 사실 이게 꽤 복잡한 명예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가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겁니다. 아킬레우스 입장에서 이건 단순한 재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전사의 아레테(aretē), 즉 탁월성과 명예를 짓밟힌 것이었죠. 쉽게 말해 아레테란 당시 그리스 전사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 덕목으로, 전쟁터에서의 용맹과 사회적 명예가 결합된 개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묘하게 공감이 됐습니다. 형과 치열하게 싸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싸움의 발단은 항상 사소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제게는 메넬라오스가 아내를 빼앗긴 것만큼이나 명예로운 문제였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 감정의 무게만큼은 진짜였거든요.

그리고 이 분노의 맥락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출처: Harvard University Press)에 나오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문제가 겹쳐 보입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이론입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것, 프리아모스가 아들 파리스를 죽이지 못한 것. 이 두 선택이 바로 고전적인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와 맞닿아 있습니다. 트롤리 문제란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 앞에 다섯 명이 묶여 있고, 레버를 당기면 방향을 바꿔 한 명만 죽게 할 수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고 실험입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리는 것이 정의인가, 아닌가. 3,000년 전 서사시가 이 질문을 이미 던지고 있었다는 게 소름 돋았습니다.

요약: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전사의 명예(아레테)가 짓밟힌 데서 출발하며, 아가멤논의 선택은 공리주의의 함정을 3,000년 전에 이미 보여줍니다.

헥토르가 더 마음에 걸린 이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리스 편이었습니다. 파리스가 명백히 잘못했고, 그로 인해 전쟁이 시작됐으니까요. 그런데 완독하고 나서 제 마음은 트로이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 이유의 중심에는 헥토르(Hector)가 있습니다. 헥토르는 트로이 최고의 전사이자 왕자이지만, 이 책에서 그가 보여주는 건 무적의 용맹함이 아닙니다. 아내 안드로마케에게 "당신이 적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기 전에 차라리 내가 먼저 죽고 싶다"고 말하는 한 남편의 모습이고, 아킬레우스 앞에서 도망치면서도 비겁자로 불리고 싶지 않아 결국 맞서는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양가감정(ambivalence), 즉 서로 모순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 상태가 헥토르에게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맞서야 하는, 살고 싶으면서도 명예를 잃기 싫은 그 갈등이요.

제가 형과 싸우면서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습니다. 절대 져서는 안 된다는 자존심과, 사실 그냥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거든요. 헥토르를 읽으며 그 시절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동생 파리스는 한심할 정도로 무책임합니다. 메넬라오스와 싸우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도망쳐 방에 돌아와서는 헬레네에게 사랑을 나누자고 하는 장면은 읽으면서 황당함을 넘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파리스를 대신해 전장의 모든 짐을 짊어지는 헥토르. 그 형제 관계가 이상하게도 익숙하게 느껴진 건 저만의 경험 때문이겠죠.

요약: 헥토르는 용맹과 두려움, 명예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가장 인간적인 영웅으로, 트로이 편에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핵심 인물입니다.

원수의 손에 입을 맞추는 순간 — 용서의 본질

일리아스의 하이라이트는 전투 장면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진짜 명장면은 프리아모스 왕이 혼자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는 대목입니다.

아들 헥토르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닌 아킬레우스. 프리아모스는 그 사람의 무릎을 두 손으로 붙잡고, 아들들을 죽인 그 손에 입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도 나 같은 늙은 아버지가 있지 않소." 세상에서 가장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그 행동을, 그는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선택합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s)』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비극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고 해방되는 경험을 뜻합니다(출처: MIT Classics).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함께 우는 그 장면에서 저도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떠올리며 울고, 프리아모스는 헥토르를 떠올리며 웁니다. 두 사람은 원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앞에서는 같은 인간이었던 겁니다.

저도 형과 절대 화해 못 할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형은 제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화해가 가능했던 건 서로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처럼,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그 순간이요. 어쩌면 가장 깊은 우정은 갈등을 겪고 서로를 용서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약: 일리아스의 진짜 클라이맥스는 원수 앞에 무릎 꿇는 프리아모스의 장면이며, 공감과 용서가 분노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중 어떤 걸 먼저 읽는 게 나을까요?

A. 저는 오디세이아를 먼저 읽고 일리아스를 읽었는데, 오히려 그 순서가 맞았다고 느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상대적으로 모험 이야기 구조라 진입장벽이 낮고, 일리아스는 전투 묘사가 많아 호메로스의 문체에 익숙해진 뒤 읽으면 더 몰입이 됩니다. 재미로만 따지면 일리아스가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졌습니다.


Q.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편 vs 그리스 편, 어느 쪽을 응원하게 되나요?

A.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완전히 갈립니다. 저는 완독 후 트로이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는데, 헥토르와 프리아모스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 편은 헤라와 아테나의 집요한 개입이 오히려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어느 쪽을 응원하든 그것 자체가 일리아스를 읽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Q. 일리아스가 철학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단순히 싸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친 선택, 프리아모스가 파리스를 죽이지 못한 선택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공리주의 딜레마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한 명을 희생해서 다수를 살리는 것이 정의인가, 그 한 명이 내 가족이라도 그 판단이 가능한가. 일리아스는 그 질문을 3,000년 전에 이미 던지고 있습니다.


Q. 일리아스 완독이 어렵지 않나요? 분량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A. 솔직히 쉽지는 않습니다. 오디세이아보다 훨씬 두꺼운 데다 전투 묘사가 반복되는 구간도 있어 지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대결, 프리아모스의 막사 방문 장면 같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 모든 고생이 아깝지 않아집니다. 완독 후의 성취감은 풀마라톤을 완주한 것에 비교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결론

일리아스를 다 읽고 나서 한참 멍하게 있었습니다. 분노로 시작해서 용서로 끝나는 이 서사가, 제 삶에서 겪어온 갈등들과 이렇게까지 겹쳐 보일 줄은 몰랐거든요. 형과 절대 화해 못 할 것 같았던 시절도, 결국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는 순간에 풀렸습니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처럼요.

일리아스는 전쟁 이야기이지만, 본질은 분노와 명예, 그리고 공감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미뤄두셨다면, 오디세이아부터 시작해서 이 책으로 넘어오시길 권합니다. 프리아모스라는 노인을 기억하게 되는 순간, 이 책이 왜 3,000년 동안 읽혀왔는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nRqTDu9F9g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